유대인의 지혜(기도)

1. 기도

유대인들은 아침, 오후, 저녁 이렇게 하루 세 번 기도를 빠짐없이 드리고, 안식일에는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아침에 회당에서 예배를 겸하여 별도의 기도를 올린다.

유대인들은 하루 두 차례 즉 아침, 저녁 기도에 반드시 ‘쉐마(Shema)’를 암송한다.
쉐마는 신명기 6장 4-9절을 이르는 말이다.
첫 단어가 ‘쉐마(Shema, 들어라)’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일종의 기도문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 누워 있을 때, 일어날 때, 언제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쉐마의 앞부분은 전심전력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내용이고 뒷부분은 하나님 말씀을 늘 공부하고 자녀들에게도 가르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이는 유대인들의 사명(Mission)과 깊은 관련이 있다.

유대인들의 존재 이유인 사명은 한 마디로 ‘말씀 맡은 자’를 뜻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며 자녀들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쉐마는 유대인들의 사명 선언문과 같다.

유대인들의 비전(Vision)은 무엇일까? 비전은 일종의 되고 싶은 모습,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의 비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티쿤 올람(Tikkun Olam)’이다. 티쿤 올람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기도하는 습관은 신앙인이 아니면 따라 하기 힘든 습관이다. 신앙인이 아닌 일반인이라면 기도 대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을 해보는 건 어떨까? 하루에 15분씩 세상의 소음이 단절된 고요한 장소에서 자신 안으로 깊게 침잠하는 명상의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져보자. 유튜브에서 ‘명상’이라고 검색하게 되면 적당한 음악과 함께 명상으로 이끄는 내레이션이 포함된 영상들이 많다. 그걸 틀어놓고 눈을 감고 내레이션의 가르침에 따라 차분히 스스로를 돌아보자. 매일 신께 올리는 기도처럼 나에게 올리는 기도라 생각하고 잠시지만 그렇게 하루에 한 번씩 명상을 해본다면 여러모로 유익한 습관이 될 것이다.

요즘 스포츠도 과학의 영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장비나 기기들, 그리고 훈련방법에서도 과학적인 부분을 접목해서 발전시켜가는 데, 이 모든 것은 무엇에 의해서 가능하냐면 바로 기록이다.

기록을 통해서 현재 어느 부분이 강점이면, 약점인지를 정확히 분석할 수 있게 되고, 그 분석에 따라 강점을 강화시키고, 약점을 점점 증가시킬 수가 있기 때문에 발전이 되는 것이다.

그럼 나 개인은 왜 발전이 되지 못하는가? 너무 쉽게 답이 나온다. 바로 측정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기때문이다. 측정을 통해 분석이 되었다면 여기에 따른 피드백이 있어야 하고, 그 피드백에 따른 실천여부가 발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아주 몸에 잘 익힐 수 있는 습관으로 기도를 사용한다.

하루 3번하는 기도가 주는 효과를 예를 들어 보겠다.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살아있음에 감사기도를 한다. 그리고 오늘 할 일에 대해 나만의 힘이 아닌 신의 도움을 간구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해내겠다고 다짐한다.

두번째 오후에 기도를 하게 된다. 이때도 살아있음에 그리고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아침에 한 기도가 이루어졌는지, 기도만 하고 행하지 않았다면 입으로만 기도했음을 회개하고, 다시 저녁까지 그 일을 해내겠다고 다짐하는 기도를 한다. 그리고 아침에 한 기도를 이루었다면, 이루게 해주심에 감사기도를 한다.

마지막 잠들기 전 기도를 통해 하루의 삶에 대해 감사기도를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가 다짐하고 도와달라고 기도했던 모든 부분들에 대해 감사와 반성의 기도를 하고, 잠들 때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평안한 밤을 보낼 수가 있다.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2.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시127:1-2)

2. 회개

회개하고 싶은 마음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회개의 주된 추진력은 과거의 것을 ‘교정(Remodeling)’하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재건(Rebuilding)’하는 것에서 온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는 것을 넘어 오류를 인정하고 자신의 인격과 과거를 재구축하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일을 완료하는 것은 너의 임무가 아니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둘 자유도 없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여기서 ‘일’을 ‘죄를 짓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죄를 한 톨도 짓지 않는 것은 너의 임무가 아니다. 그렇다고 죄를 마음대로 지을 자유도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마음을 다해 애써야 한다. 그게 마음대로 안 되니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를 통해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회개를 기회 삼아 일부러 죄를 지으려 해선 안 된다.

우리의 인생은 수정의 연속이다. 잘못을 교정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인격적 성숙에 이르게 된다. 사리를 분별하고 선악을 알며 옳고 그름을 깨닫게 된다. 아마도 실수와 실패가 없으면 우리에게 성숙이란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완전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끊임없는 죄악의 교정과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회개만이 한 발작 한 발작 온전한 인품에 이르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죄악 된 행위가 습관이 되기 전에 매일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회개하는 삶은 좋은 인성으로 나아가는 삶 그자체다.

유교의 논어 학이(學而)편에도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이라는 말이 있다. ‘하루에 세 번 반성한다’는 뜻이다. 이를 줄여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고도 한다.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의 중요성은 동서양이 따로 없다. 매일 정기적으로 자기의 행동을 돌아보고 악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습관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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